엔지니어는 항상 문제와 맞닥뜨린다. 엔지니어의 주 업무는 현장의 다양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다.
엔지니어는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여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다. 대부분의 문제는 그렇게 해결된다. 그러나 그 중에는 유달리 잘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게 마련이다.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들은 처음에는 보통의 문제와 같이 등장한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들은, 해결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지나지 않아 다시 같은 문제가 재발한다거나 해결안이 다른 문제를 일으켜서 적용하기 어렵다거나 하는 식으로 부활과 변신을 거듭해가며 엔지니어들을 괴롭힌다.
이 문제들이 애초부터 높은 지식수준이나 장기간의 경험, 그리고 다수의 노력과 많은 비용을 들여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그냥 '좋은 경험'을 한 것으로 스스로 위로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들여 해결하고 난 다음, 해결된 모습을 돌아보면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간단한 원리와 방법으로 해결된 것을 보는 경우가 의외로 자주 있다.
왜 우리는 처음부터 그 원리와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이전에 그와 같은 일을 경험하지 못해서, 즉 경험과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엔지니어링 시스템을 제대로 갖춘 현장이라면 동일한 원인으로 문제가 반복해서 일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전의 경험으로 엔지니어들이 쉽게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그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해 둘 것이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를 괴롭히는 문제는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처음 맞닥뜨리는 유형으로 나타난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간단한 원리와 방법을 왜 처음부터 생각해 내지 못했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하여 '집 안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놓고 생각해 보기로 하자.
주말 낮이다. 소파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뒹굴거리다가 약속한 외출 시간이 되었다. 주섬주섬 옷을 찾아입고 나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어제 퇴근 때는 가방 속에 있는 지갑을 봤고, 불과 한두시간 전에 지갑 안의 신용카드로 물건을 주문하기까지 했다. 그랬는데 당장 외출해야 하는 지금은 그 지갑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모르는 사이에 발끝에 채여서 구석으로 들어갔나 해서 소파 밑이나 침대 밑을 플래시를 켜 가면서 들여다 보고 막대기로 휘저어 보기도 하지만 이러한 수고에도 불구하고 지갑은 나타나지 않는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그럴수록 답답함과 짜증만 커질 뿐이다. 결국 지갑을 찾지 못한 채 외출을 하고, 내내 마음 한 구석에 해결되지 않은 답답함과 짜증이 남아 있는 채로 돌아와서는 소파에 털썩 몸을 던져 앉는다. 그러다 옆에 제쳐놓은 잡지가 눈에 띄여 별 생각없이 집어올렸는데, 그 밑에서 그렇게나 찾던 지갑이 나타난다. 우리가 늘상 겪는 일이다.
'집 안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찾는' 문제와 과 '간단한 원리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나 그 해결안에 도달하기까지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여야 했던' 문제에는 공통점들이 꽤 있다. 끓어오르듯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나는 생각과 짜증들, 조여들어오는 시간과 상황의 압박감들, 눈으로는 보았으나 의식으로는 인식되지는 않은 물상들 등이 그런것이다.
그래도 그 중에서, 문제해결을 어렵게 한 공통점을 들자면 두 문제 모두 일상적인 생활범위와 일상적인 생각범위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해결안이 있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해결안이 어렵지는 않으나 그 해결안이 늘상 지나다니는 곳에 있지 않고 살짝 벗어난 곳에 있으면 찾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어려운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경험과 지식이 '빠뜨린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김효준 著, '생각의 창의성').
경험과 지식이 많아지면 생각이 지나다니는 영역이 넓어지고 많아지는것과 같다. 생각의 영역의 면적이 커지므로 문제에 대한 해결안이 그 범위 안에 있을 가능성도 커진다. 그러므로 경험과 지식이 적은 경우보다 더 많은 문제를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엔지니어라면 당연히 경험과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장시간의 노력과 'Trial and Error'에 의한 손실이 필요하다. 게다가 경험과 지식은 영역을 넓힌다고 하더라도 '빠뜨린다'는 약점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경험과 지식의 영역 바깥에 떨어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동일한 어려움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다.
'빠뜨린다'는 것은 해결안이 그 엔지니어가 가진 경험과 지식의 영역 바깥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경험과 지식의 영역 바깥에 있는 문제는 당연히 어렵다.
그런데 경험과 지식의 영역의 넓이가 비슷하다고 해서 그 문제가 누구에게나 똑같은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가진 경험과 지식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떤 엔지니어 A에게 경험과 지식의 '영역 바깥'에 있는 문제가 또 다른 엔지니어 B에게는 '영역 안쪽'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A가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역 바깥'의 문제에 대하여 B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여 쉽게 해결했다고 해 보자. 그 해결안은 B에게는 '영역 안'의 문제라서 쉽게 생각할 수 있었던 해결안이다. 그러나 A에게는 그 해결안은 생각이 지나다니는 영역의 바깥에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A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경험과 지식의 영역 바깥에 있는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여 해결안을 떠올리는 일은 일어나기가 어려운 일이다.
현실이 이렇다면 끓는 거품처럼 솟아오르는 수많은 문제들이 요행히 해당 엔지니어의 경험과 지식의 영역 안에 있기만 바라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문제들은 그 영역을 맡고 있는 엔지니어의 경험과 지식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다양한 상황에서 무작위로 주어지는 조건을 배경으로 생겨나기 마련이다.
트리즈(TRIZ)는 현장의 엔지니어가 맞닥뜨리는 문제에 대해서, 특히 엔지니어가 해결안을 찾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빠뜨리지 않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여' 해결안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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