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기술'을 '돈'으로 바꾸는 업종이다. 제조업 회사의 영업이익은 '기술'을 '돈'으로 바꾸어서 나온다.
제조업 회사의 연구조직은 '기술'을 만들고, 제품개발 조직은 이 기술을 '돈'으로 바꾼다. 생산기술조직과 영업조직은 이 '돈'을 '현금'으로 바꾼다.
연구-제품개발-생산기술이 하는 역할은 가 보지 않은 오지에 길을 내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예를들어 밀림과 사막을 건너 험준한 산맥에 좋은 철광석이 많이 매장되어있는 광맥이 발견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회사는 그 철광석을 채굴하는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전에는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지도도 없다. 그래서 회사는 먼저 탐험대를 보낸다. 텀험대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점을 찾아서 조심스럽게 나아간다. 급류를 만나면 밧줄 한가닥으로 건너가기도 하고 오아시스를 만나면 소중하게 표시도 해 가면서 어쨌든 백지 상태의 지도를 채워 산맥의 철광석 광맥까지 도달할 수 있는 루트를 작성한다. 일단 현재 사용 가능한 역량으로 목적지까지 도달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연구조직의 임무이다.
그 다음은 제품개발의 차례다. 제품개발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뿐 아니라 최소한의 사업이 될 수 있을 만큼의 철광석을 캐내어 운반하는 것까지가 임무다. 그래서 허용되는 한 넓은 도로를 만들어야 하며 어려워도 왕복 2차로 정도의 도로는 만들어줘야한다. 지금은 길 자체가 없지만 탐험대가 표시한 루트를 따라 지반을 단단하게 해 가며 길을 내 가는 것이다. 급류나 계곡을 밧줄로 건널 수는 없으니 당연히 다리도 지어가면서 길을 낸다. 다리를 놓는 것이 도저히 어려우면 케이블 카 같은 이전에 안해봤던 방법을 동원해야 할 때도 있다. 처음 길을 내는 것이니까 입체 교차로 같이 편리한 구조물은 사치고 그냥 신호등만 세우고 지나가기도 하고, 다리도 작은 다리로 만족하면서 나아간다. 군데군데 병목도 있고 어렵게 통과하는 구간도 있겠지만 어쨌든 정해진 시간 내에 철광석 광맥까지 길을 내면 성공이다. 길은 가능한한 안전하고 사업이 될만하게 통행량이 가능해야 한다.
이윽고 사업이 시작되어 제품개발에서 놓은 길을 확장해야 할 때 생산기술이 그 길을 고속도로로 만드는 일을 한다. 병목구간도 해결하고 신호등 대신 입체 교차로를 만든다. 다리도 크고 튼튼한 것으로 새로 짓기도 한다. 구간에 따라서는 기존에 만들어 놓았던 길을 통째로 버리고 새로운 길을 만들기도 한다. 큰 도로와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만 철광석 운반량은 더 많아지고 사업성과는 높아질 것이다.
연구-제품개발-생산기술의 임무가 이렇게 나뉘어지니까, 연구조직에서는 지도 만드는 일을 완결하지 않고 제품개발에게 넘기면 안된다. 만약 그렇게 하면 미처 연구가 되지 않은 지점부터는 개발이 탐험해가며 길을 내야 하는데, 탐험과 길 내는 것을 같이하다보니 좋은 길을 만들기 어려워지고 늦어진다.
개발은 어쨌든 길을 내는 것이 임무이므로 사업이 가능할 만큼은 길을 내줘야 한다. 길 만드는 일을 생산기술에게 넘기면 안된다. 그러면 생산기술은 역시나 길을 새로 내면서 동시에 길을 넓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을 하게 되어서 넓고 효율적인 길을 만드는데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게된다.
생산기술은 제품개발이 낸 길에 대해서 뭐 이따위를 길이라고 만들었냐면서 비웃으면 안된다. 새로 만든 고속도로에 비하면 예전에 다니던 2차로 도로는 당연히 구불거리고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제품개발이 길을 낼 때는 아예 길이 없었고, 그 때는 그 길이 가장 넓고 빠른 길이었다.
사업이 진행되다보면 때로는 길이 없는 단계에서 바로 고속도로를 완성해야 하거나, 목적지가 갑자기 변경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연구-제품개발-생산기술이 앞뒤로 바짝 붙어 진행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역할을 누락하거나 떠 넘기지 않으면, 즉 순서만 뒤섞이지 않으면, 어려운 문제들도 빠르게 해결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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